프리미엄급 자동차 시장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벤츠(Benz)–BMW의 양강에 아우디(Audi)가 한 축을 이루던 삼각 구도가 무너지고, 제네시스(Genesis)가 그 일각을 확실히 장악했다. 제네시스는 아우디를 밀어냈고, 한걸음 더 나아가 BMW 자리를 넘보며 벤츠와 맞짱을 뜨려는 기세다. 제네시스의 성공신화가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동차 조사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2001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연례 자동차 기획조사`에서 매년 새 차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그 차를 사기 전에 마지막까지 비교한 차가 무엇인지’를 묻고 이를 통해 구매 최종단계까지 경합한 브랜드를 확인, 경쟁 구도를 파악해 왔다. 이 리포트는 2016, 2018, 2020년도 조사에서 나타난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경쟁 역학구도 분석 결과를 다룬 것이다.
■ 제네시스 구매 고객 ‘벤츠 살까?’ 끝까지 저울질
3개 연도(2016, ´18, ´20)에 프리미엄 6개 브랜드(벤츠, BMW, 제네시스, 아우디, 볼보, 렉서스)가 소비자의 최종 의사결정 단계에서 보인 경합 양상을 분석한 결과 ‘벤츠–BMW’가 가장 강력한 경합관계를 유지했다. 벤츠를 구매하는 사람은 BMW를, BMW를 구매하는 사람은 벤츠를 최종 구매결정 순간까지 가장 많이 저울질해 두 브랜드의 양강구도에는 변화가 없었다[그림1].
그러나 제네시스의 브랜드 독립과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의 품질 관련 문제들로 인해 시장판도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변화의 중심은 2015년 11월 공식 출범한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다. 2016년 제네시스의 1차 경합 브랜드는 BMW였으나 2018년에는 BMW를 제치고 처음으로 벤츠가 1차 경합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20년에는 벤츠와 경합 강도가 더 상승했다.
이는 최강 프리미엄 브랜드 벤츠에 대해 제네시스가 BMW와 대등한 경쟁 위치를 확보했다는 방증이다. 2016년만 해도 제네시스 구매자는 ‘제네시스를 살까, BMW를 살까’를 1순위로 고민했다면 2018년부터는 BMW를 2순위로 제쳐놓고 ‘제네시스냐, 벤츠냐’를 우선 저울질하고 있다.
■ 제네시스–벤츠, 제네시스–BMW 비교고객 3명 중 2명은 제네시스 선택
그러면 제네시스와 벤츠, 제네시스와 BMW를 놓고 저울질하던 고객은 최종적으로 어떤 차를 선택했을까. 놀랍게도 3명 중 2명은 제네시스를 선택했다. 구입 의사결정의 최종단계에서 제네시스가 벤츠와 BMW를 2 대 1로 앞섰다는 것은 경이적이다. 조사 결과는 제네시스의 역동적 디자인(외관 스타일)과 신차 효과(최신모델)가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했음을 보여 준다.
■ 볼보 고객은 벤츠-BMW와 대등한 위치로 인식
아우디가 부진의 길을 가고 있다면, 볼보(Volvo)는 이와 반대의 진로를 밟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연간 1만대 이상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볼보(Volvo) 구입 고객들은 볼보를 벤츠, BMW와 대등한 위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볼보의 최대 강점은 ‘안전한 차’라는 대중 이미지와 ‘최고의 상품’이라는 고객 만족도를 준다는 점이다. 안전성과 상품성으로 무장한 볼보의 경쟁력도 주목할 만하다.
렉서스의 입지는 흥미롭다. 렉서스 구입자는 제네시스를 비교 대상 1, 2순위로 고려한 데 비해 제네시스 구입자는 3순위 밖으로 생각했다. 렉서스는 조사에서 영업, 서비스, 품질 전반 고객만족도 모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브랜드임에도 한국 고객 마음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노재팬 후폭풍 탓인지 지난해에는 4순위까지 밀려났다.
■ 제네시스의 약진, 계속 될 수 있을까?
제네시스는 판매와 이미지 메이킹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은 확신하기 어렵다. 제네시스 구입자의 평가, 즉 고객만족도가 높지 않다. 체험 품질문제점 수, 품질만족도, 서비스만족도, 종합고객만족도 모두 하위권이며, 최상위권인 벤츠, 렉서스와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제네시스의 초기 품질문제점 수가 경쟁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국내 일반 브랜드보다 열세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제네시스 판매 성공의 일부는 분명히 신차효과와 디자인, 외산보다 풍부한 편의사양에 있겠지만 유일한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애국소비 성향에 힘입은 바 크다. 최근 구입자가 평가한 당연품질(must-be quality)에서 경쟁자에 크게 뒤진다면 커다란 품질 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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